导演的镜头设置是出自坚持与电视剧不同的电影手法,不用特写镜头知识风景和人物的组合也可以传达信息以及表达情感,另外最主要原因是6.25战争是父亲一代的人生背景,而作为61年出生80年代上大学的子一代-386世代,用更客观地视角可以更接近历史的真实。而为了弥补剧情的叙述,电影中不间断地插入黑底文字镜头,上半部是像儿子的日记本一样的私人记事,而下半部则是公共的大写历史,公与私的对照进一步凸显了剧中人物是历史中的人物。
1.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창희는 그 라이터를 소중히 여겼다.
1952년 8월10일 거제도 피난민 식량 소요 발생-다수의 피난민들, 읍사무소 난입
2.미군 장교와 사귀던 누나 덕분에 아버지는 미군 부대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1952년 8월29일 연합군, 개전 이래 최대의 평양공습
3.다음 날 현옥에게서 돌려받은 작은 할머니의 손거울은 깨겨 있었다.
1952년 9월4일 이승만 대통령 저격사건 구형-김시현, 유시태에 사형
4.선생님의 가족들을 몰살한 아버지 때문에 따돌림당하던
'빨갱이의 아들' 상언이는 그날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1952년 10월1일 유엔, 한국원조 2억불 결정
5. 잃어버린 미군 속옷 빨래를 창희네는 끝내 찾지 못했다.
1952년 10월 2일 구호물자 특별배급 전면 중단
6. 나는 그 날 이후 다시는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1952년 10월12일 백마고지 전투 점차 가열
7. 이듬해 여름이 다 가도록 창희는 돌아오지 않았다.
1952년 10월14일 제7회 유엔 총회 개막-한국 문제 논의
8. 프로수용소에서 돌아온 창희 아버지는 보름이 지난 후에야 거동할 수 있었다.
1953년 7월27일 휴 전협정 조인 완료-휴전 협정 180일간 준수
9. 빈 상여로 창희의 장례식을 치른 후, 우리는 작은 무덤도 하나 만들어 놓았다.
1953년 10월10일 반공프로, 공산측 귀환 설득 거부
10. 스미스 증위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지만 누나는 영영 그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1953년 11월 13일 닉슨 미 부통령 내한
11. 물건을 빼돌리다 쫓겨난 아버지에게
미군들이 끼얹어놓은 붉은 페인트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1953년 12월26일 미국, 한국에서 2개 사단 철수 결정
12. 이 세상 어딘가에 창희는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13. 고난과 절망의 시대에도 늘 희망의 불씨를 간직하고
사셨던 할아버님과 아버님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